국민연금이 '안 팔기로' 결정한 날, 리밸런싱을 유예한 연기금의 선택
지금까지 원칙이던 기계적 매도를 처음으로 유예했다
기금 1,438조 시대에 이 결정이 의미하는 것을 본다
공식 의결일
2025.11 기준
상한선 (원칙)
국민연금 고지서를 보면 매달 빠져나가는 숫자가 있다. 2026년 1월부터 보험료율이 9%에서 9.5%로 올랐다. 이 돈은 어디로 가는가. 적립된 기금은 결국 시장에 투자된다. 그리고 2026년 1월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그 기금을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한 이례적인 결정이 내려졌다. 국민연금이 스스로 정해둔 매도 규칙을 '한시적으로 유예'하기로 한 것이다. 이 결정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1. 2026년 1월 26일 — 연기금이 내린 이례적 결정
2026년 1월 26일 오후,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열렸다. 서울파이낸스 보도에 따르면, 결산이 끝나지 않은 1월에 기금위 회의가 소집된 것은 2021년 이후 5년 만이다. 이날 의결된 '국민연금기금 포트폴리오 개선방안'에는 세 가지 결정이 담겼다.
첫째, 2026년도 해외주식 목표비중을 38.9%에서 37.2%로 1.7%포인트 낮췄다. 둘째,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14.4%에서 14.9%로 0.5%포인트 올렸다. 셋째,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범위를 벗어나도 기계적 매매를 발동시키지 않는 '리밸런싱 한시 유예'를 결정했다.
앞 두 가지는 비중 조정이라 이해하기 쉽다. 문제는 세 번째다. 원래 국민연금은 자산군 비중이 정해진 허용범위(국내주식의 경우 목표 ±3%p)를 벗어나면 자동으로 매도 또는 매수에 나선다. 이 기계적 장치는 리스크 관리의 핵심이다. 그런데 그걸 멈추기로 한 것이다.
2. 리밸런싱이란 무엇인가 — 원래 팔아야 했다는 뜻
리밸런싱은 단순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 목표가 '국내주식 14.9%, 해외주식 37.2%, 국내채권 30%, 기타 17.9%'라고 하자. 처음엔 이 비율로 맞춰놓아도, 시간이 지나면 주가 상승이나 금리 변동으로 비중이 흔들린다. 주가가 많이 오르면 국내주식 비중이 저절로 20%가 되고, 채권 비중은 25%로 떨어지기도 한다.
이때 '비싸진 자산을 팔아 싸진 자산을 사서' 원래 비율로 되돌리는 절차가 리밸런싱이다. 투자의 기본 원칙인 "쌀 때 사고 비쌀 때 판다"가 기계적으로 구현되는 장치다. 동시에 '한쪽에 과도하게 몰리지 않도록' 막는 리스크 분산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은 2019년 현행 리밸런싱 기준을 도입한 이후 이 체계를 작동시켜 왔다. 그런데 최근 코스피 급등으로 국내주식 비중이 치솟자, 원칙대로라면 대규모 매도를 해야 했다. 2025년 11월 말 기준 국민연금 국내주식 비중은 이미 17%에 도달했다. 목표 14.9%를 상당히 웃돌았고,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현재는 허용 상한선 19.9%까지 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민연금 국내주식 비중 vs 목표·허용 상한선
출처: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의결사항(2026.1.26), 서울신문·정책브리핑 보도 종합. 상단 값은 코스피 추가 상승을 반영한 추정치.
3. 왜 이런 결정이 나왔나 — 기금 규모 2배의 부메랑
핵심은 기금 규모다. 정책브리핑에 따르면 현행 리밸런싱 기준이 도입된 2019년 당시 기금 규모는 713조 원이었다. 그런데 2025년 11월 말 기준 1,438조 원으로 2배 이상 불어났다. 2025년 수익률이 역대 최고인 18.6%(추정)를 기록하면서 기금이 더 빠르게 커지고 있다.
기금이 커질수록 같은 비율의 매매도 절대 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국내주식을 목표 비중 수준으로 되돌리려면 수십조 원대의 매도가 필요할 수 있다. 이 물량이 한 번에 쏟아지면 주가 하락을 유발하고, 그 하락 탓에 다른 연기금이나 개인도 영향을 받는다. 리스크 관리 장치가 오히려 시스템 리스크를 만드는 역설이 생긴 것이다.
기금운용위는 이 문제를 공식 사유로 밝혔다. 의결문에는 "몇 년간의 높은 기금 운용 성과로 기금 규모가 빠르게 확대돼 리밸런싱 발생 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점"이라는 문장이 명시됐다. 이투데이 보도에 따른 표현이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던 사실이 이 문장 한 줄에 담겨 있다. 연기금이 너무 커져서 원래 작동하던 안전장치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게 됐다는 고백이다.
4. '안 판다'는 선택의 3중 딜레마
리밸런싱 유예는 당장의 시장 충격을 피하는 선택이지만 그 자체로 3가지 딜레마를 만든다.
첫째, 단기 수익 vs 장기 안정성. 국내주식 랠리가 이어질 때는 안 파는 것이 수익률에 유리하다. 2025년 국민연금 국내주식 수익률은 70.07%, 벤치마크를 3.47%포인트 웃돌았다. 그러나 랠리가 꺾이면 이 결정은 반대 방향의 충격으로 돌아온다. 이콘밍글 보도는 "단기 수익률 추구가 장기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전문가 지적을 전했다.
둘째, 집중 리스크의 고착화. 리밸런싱은 "특정 자산에 과도하게 몰리지 않도록" 막는 장치다. 이것을 유예한다는 것은 편중을 용인한다는 뜻이다. 국민연금 국내주식 평가익 증가분의 54%가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 두 회사에 쏠려 있다는 사실은 별도로 다룬 코스피 6,000 — 신호인가, 편중인가에서 확인한 바 있다.
셋째, 제도의 예측 가능성 훼손. 국민연금의 매매 원칙이 명확할수록 시장은 예측 가능성을 얻는다. 허용범위 안쪽에서는 자유 운용, 바깥에서는 기계적 매매라는 명확한 규칙이 있었다. 유예는 이 규칙에 예외를 만든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또 유예할지, 아니면 기준 자체를 바꿀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생긴다.
5. 편중은 해소가 아니라 고착된다 — 포트폴리오의 현재
리밸런싱 유예의 가장 구체적 결과는 포트폴리오 상단의 고정이다. 아래 표는 국민연금이 공시한 2025년 11월 말 기준 주요 구성이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있다. 국내주식 17%는 2025년 11월 말 수치다. 이후 코스피가 4,000대에서 6,000대로 추가 상승했다. 리밸런싱이 정상 작동했다면 그 상승분은 부분적으로 매도로 전환돼 다른 자산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유예 결정은 그 이동을 막는다.
결과적으로 국민 노후자금의 국내주식 비중은 '자연 상승'만큼 계속 올라간다. 2026년 1월 기준 국내주식 투자 규모는 330.4조 원으로 기금 전체의 21.4%를 차지했다. 목표 14.9%와 6.5%포인트 차이다. 이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당분간 유지된다.
6. 해외에도 편중돼 있다 — 북미 70.5%의 그림자
국내 편중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연금 공시에 따르면 해외주식 투자의 70.5%가 북미 지역에 몰려 있다. 유럽 14%, 아시아태평양 8.5%와 비교하면 압도적이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신임 이사장은 2026년 초 기자간담회에서 "신흥국에 다섯 번째 해외사무소를 개설해 수익률을 높이겠다"고 밝혔지만, 북미 편중 구조의 단기 해소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달리 말하면 국민연금은 지금 두 개의 편중을 동시에 안고 있다. 국내에서는 반도체 2강과 대형주에, 해외에서는 북미 기술주에 집중돼 있다. 두 편중 모두 2023~2025년 AI 랠리의 수혜를 받으며 수익률을 만들어냈다. 이 구조는 상승장에서는 강점이지만 하락 국면에서는 반대로 작용한다.
국민연금 해외주식 지역별 비중
출처: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공시, 2025년 기준
7. 이 결정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2026년 1월 26일의 결정을 해석하는 방식은 단순하지 않다. 세 가지 층위에서 읽을 수 있다.
행정적으로는 합리적 선택이다. 기금 규모가 2배 커진 상황에서 기존 규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오히려 시장을 흔들 수 있다. 시장 안정을 위해 유연성을 도입하는 것은 타당한 운영 판단이다.
그러나 제도적으로는 경고 신호다. 안전장치를 유예해야 할 만큼 기금이 커졌다는 것은, 다음 유예 결정이 언제든 다시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기금 규모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난다. 2026년 1월부터 보험료율이 9.5%로 인상되면서 가입자 부담이 커졌고, 정부 전망대로 수익이 난다면 기금은 더 빠르게 불어난다. 규모가 커질수록 '기계적 매매 원칙'은 더 자주 유예될 가능성이 높다.
개인에게는 구조적 의미가 있다. 내가 매달 내는 국민연금 보험료는 국내외 증시의 특정 종목과 지역에 편중된 형태로 투자되고 있다. 그리고 그 편중은 자연스럽게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내 노후자금의 절반은 사실상 반도체 2강과 북미 기술주 섹터의 향배에 달려 있다. 이 구조를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르다.
국민연금 기금 규모 추이 (2019 → 2025)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2026.1.27). 현행 리밸런싱 기준 도입 시점 대비 6년간 2배 이상 확대.
Q렌즈의 시각
2026년 1월 26일의 결정은 "쌀 때 사고 비쌀 때 판다"는 기본 원칙을 2025년 국내 랠리에 맞춰 유보한 현명한 운용일 수 있다. 동시에, 안전장치를 유보해야 할 만큼 기금이 커진 제도적 임계점의 신호이기도 하다. 두 해석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둘 다 맞을 수 있다.
중요한 질문은 "옳은 결정이었는가"가 아니다. 앞으로 이런 결정이 반복될 때마다 누가 책임을 지고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는가이다. 기금위의 유예 결정은 '상반기 시장 상황을 보고 재검토'라는 조건부였다. 그 재검토 시점과 기준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개인 입장에서는 한 가지를 기억해두면 된다. 내 노후자금은 자동으로 분산되고 있지 않다. 제도가 편중을 용인하기로 결정한 구간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구간이 끝날 때의 모습은 지금부터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