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도시재생은 어떻게 다른가 — 일본·영국·미국
지역 쇠퇴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일본·영국·미국은 같은 문제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것도 오래 시험해 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 나라의 처방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정부 보조금을 뿌리는 대신, 현장이 스스로 돈을 만들거나 쇠퇴를 직시하는 구조를 짰다는 점이다. 앞 편에서 본 "보조금이 끊기면 무너진다"는 함정을, 이들은 제도 설계로 피하려 했다.
일본 — 빈집을 직시하고 도시를 줄인다
일본의 빈집은 한국이 보게 될 미래에 가깝다. 2023년 10월 기준 일본의 빈집은 약 900만 호로 역대 최다이며, 빈집률은 13.8%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1993년 448만 호에서 30년 만에 정확히 두 배가 됐다(Nippon.com, 총무성 통계국 자료, 2024-05). 특히 임대·매매용도 별장도 아닌 이른바 방치형 빈집이 390만 호로, 전체 빈집의 42.8%를 차지하며 빠르게 늘고 있다. 와카야마·도쿠시마현은 빈집률이 21.2%에 이른다.
일본의 대응은 두 갈래다. 하나는 빈집은행으로, 지자체가 빈집 매물을 등록·중개해 거래를 돕는다(일본 국토교통성 빈집·빈터 은행). 다른 하나는 컴팩트시티로, 인구가 주는 현실을 인정하고 거점에 거주와 기능을 모아 도시 자체를 줄인다. 늘리는 재생이 아니라 줄이는 재생이다. 한국의 빈집 160만 호(1편)가 가는 방향을 먼저 걷는 나라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무겁다.
영국 — 상권이 스스로 돈을 걷는다 (BID)
영국의 BID(Business Improvement District)는 정부가 돈을 대는 방식이 아니다. 정해진 구역 안의 사업체들이 투표로 가결하면, 기존 사업세 고지서에 부담금(levy)을 얹어 그 돈으로 청소·치안·환경 같은 추가 서비스를 스스로 운영한다(영국 정부 안내(GOV.UK)). 부담률은 통상 과세표준의 1~4%, 운영 기간은 최대 5년이며, 연장하려면 다시 투표를 거쳐야 한다. 운영 주체는 대부분 비영리 회사다.
핵심은 수익자 부담이다. 상권이 좋아져 이득을 보는 사업체들이 직접 비용을 낸다. 보조금처럼 위에서 내려오는 돈이 아니라, 현장이 스스로 걷고 스스로 쓰는 돈이라 끊길 위험이 적다. 다만 전제가 있다. 사업체들이 "돈을 더 내서라도 거리를 살리겠다"고 동의해야 한다는 것. 상권의 결속이 약하면 투표 자체가 통과되지 않는다.
미국 — 민관이 오래 쌓는다 (메인스트리트)
미국의 메인스트리트 운동은 시간이라는 변수를 보여 준다. 1980년 이후 누적으로 지역에 재투자된 돈이 1,246억 7,000만 달러, 순증 사업체가 18만 8,583개, 순증 일자리가 85만 2,443개, 리모델링된 건물이 35만 6,424동에 이른다(Main Street America, Collective Impact). 2025년 한 해만 보면 프로그램 운영비 1달러당 23.13달러의 민관 투자가 따라붙었다.
이 숫자의 핵심은 규모가 아니라 누적이다. 한 해 성과는 화려하지 않지만, 역사 보존과 상권 조직화를 40년 넘게 쌓아 올린 결과다. 빠른 한 방이 아니라 느린 복리에 가깝다. 한국의 도시재생이 임기 단위로 사업을 갈아엎는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한국에 옮길 때의 함정
제도만 베끼면 실패하기 쉽다. 일본 빈집은행은 매물을 올려도 소유·상속 관계가 얽혀 거래가 더디다. 빈집을 직시하는 사회적 합의 없이 제도만 들여오면 등록만 쌓이고 거래는 안 된다. 영국 BID는 사업체가 스스로 부담금을 낼 의지가 있어야 굴러가니, 상권의 결속이 약한 쇠퇴지역엔 그대로 옮기기 어렵다. 미국 메인스트리트는 수십 년의 누적이 전제라, 임기 안에 성과를 내려는 사업과는 시간표가 다르다.
세 나라를 관통하는 교훈은 결국 2편의 결론과 같다. 돈은 위에서 뿌리는 보조금이 아니라, 현장이 스스로 만들거나 쇠퇴를 인정하는 구조에서 돈다. 한국의 토대(1편)를 채우는 일도, 결국 제도의 형식이 아니라 그 밑에 깔린 합의와 시간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