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 Wren · 2026.04.18 · 약 9분

전기차가 더 위험한가, 10만대당 14건이 말하는 공포의 구조

뉴스에서 전기차 화재 장면을 본 뒤, 지하주차장에 들어갈 때 고개를 한 번 더 돌린 적이 있다면
숫자가 말하는 전기차 화재율은 실제로 내연차보다 낮다
그런데 왜 공포는 전기차 쪽에만 쌓이는가 — 빈도와 심도의 차이를 읽는다
11.89건 2024년 전기차 10만대당
화재 건수 (환경부·소방청)
14.95건 2024년 내연차 10만대당
화재 건수
38억원 청라 벤츠 EQE 1대 화재가
만든 재산피해 (2024.8)

2024년 8월 1일 새벽 6시,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충전도 하지 않고 사흘째 주차만 되어 있던 메르세데스-벤츠 EQE 350 한 대였다. 화재가 진압되기까지 여덟 시간. 피해 차량 140대, 전소 72대, 재산피해 추산 38억원. 480세대가 단전·단수로 집을 비웠다. 경찰은 넉 달 후 "원인 불명"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이 장면은 한국 사회에 전기차 화재라는 단어를 박았다. 공포가 숫자처럼 쌓였고, 아파트마다 지하주차장 충전기를 둘러싼 분쟁이 시작됐다. 그런데 정작 전기차 화재율을 꺼내 보면, 숫자는 반대쪽을 가리킨다.

1. 숫자가 먼저 말하는 것

환경부·소방청이 2025년 4월 공개한 2024년 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 10만대당 화재 건수는 11.89건이다. 같은 해 내연차는 14.95건이었다. 전기차가 내연차보다 약 20% 적다. 전기차 보급대수는 전년 대비 25.8% 늘었지만 화재 건수는 사실상 같았다.

해외 통계도 방향은 같다. 영국 에너지절약신탁이 2025년 1월 발표한 수치는 더 극단적이다. 전기차 화재 확률 0.0012%, 내연차 0.1%. 산술로는 약 83배 차이다. 스웨덴 시민안전청은 2022년 기준 10만 대당 전기·하이브리드 3.8건 vs 내연 68건으로 집계했다.

숫자만 본다면 결론은 단순하다. 전기차는 내연차보다 덜 탄다. 그러나 체감은 반대다.

2. 체감은 왜 반대인가

한국에서 전기차 화재는 2019년 7건에서 2024년 73건으로 늘었다. 절대값만 보면 10배 증가다. 이 숫자는 뉴스 헤드라인으로 쓰이기 좋다. 반면 같은 기간 전기차 누적 등록대수가 약 6~7배 늘었다는 사실은 기사 안쪽으로 들어간다.

빈도(frequency)와 노출(exposure)의 차이다. 확률이 같아도 모집단이 커지면 사건 수는 선형으로 늘어난다. 대중은 사건 수를 본다. 확률은 통계학자가 본다.

2024년 차량 10만대당 화재 건수 비교

내연차
14.95건
전기차
11.89건

출처: 환경부·소방청·한국전기차사용자협회 (2025.4, 전자신문)

미디어 노출의 비대칭도 있다. 내연차 화재는 미국에서 2~3분에 한 번 발생한다. 뉴스가 되지 않는다. 전기차 화재는 여전히 "드문 사건"이기 때문에 카메라가 따라붙는다. 촬영되고, 공유되고, 반복 재생된다. 반복 노출이 확률 감각을 대체한다.

3. 그래서 공포는 틀렸는가 — 빈도와 심도

틀리지 않았다. 다만 겨냥이 어긋나 있다.

핵심은 빈도와 심도를 구분하는 것이다. 전기차는 화재 발생 빈도(frequency)는 낮지만, 한 번 터졌을 때의 심도(severity)가 크다. 청라 사례가 이를 드러냈다.

  • 차 한 대 화재가 차량 140대 피해로 번졌다
  • 리튬이온 배터리는 800~1000°C까지 오른다 (내연차와 유사)
  • 그런데 진압에 물 4,000~10,000리터가 필요하다
  • 외부 불꽃을 꺼도 화학반응으로 재발화 가능성이 남는다

내연차 화재도 연소 온도는 비슷하다. 차이는 열폭주(thermal runaway)라는 배터리 특유의 메커니즘이다. 셀 하나가 과열되면 이웃 셀로 연쇄 전달된다. 전기차 배터리는 차량 하부 철제 팩에 밀봉되어 있어 물을 부어도 닿지 않는다. 내연차처럼 엔진 덮개를 열고 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전기차 화재가 드문 이유는 기술이고, 크게 번지는 이유는 구조다.

4. 청라가 38억이 된 이유

청라 화재의 피해 규모를 만든 건 배터리뿐이 아니었다. 세 가지가 동시에 겹쳤다.

첫째, 지하 환경. 연기가 배기구와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파트 단지 전체가 연기에 덮였다. 지상 주차장에서 났다면 같은 사건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스프링클러 미작동. 인천소방에 따르면 해당 아파트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 2024년 실시한 실규모 시험에서는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가 나도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면 피해 확산을 억제할 수 있었다. 즉 청라에서 번진 원인은 "전기차여서"가 아니라 "스프링클러가 꺼져 있어서"였다.

셋째, 배터리 제조사 품질 이슈. 문제의 EQE에는 중국 파라시스(Farasis Energy) 배터리가 탑재돼 있었다. 시장 점유율 0.87%의 회사로, 2021년 베이징자동차에 공급한 배터리 결함으로 3만 1,963대를 리콜한 적이 있다. 2023년에는 같은 모델이 미국 플로리다에서도 전소됐다. 벤츠는 협력 관계 재검토 중이었고, 파라시스는 적자가 누적돼 2023년 말 국영 기업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청라 화재 피해 규모 구성 (소방당국 추산 38억원)

부동산 피해
24억원
동산 피해
14억원
차량 140대
72대 전소

출처: 인천 서부소방서 (2024.12, 뉴시스). 보험사 추산은 다를 수 있음

이 세 가지가 겹친 사건은 드물다. 그런데 드문 사건이 실제 피해 규모에서는 가장 큰 인상을 남긴다. 전기차 주차거부 민원은 사고 전 연 1~2건이었다가 사고 이후 6개월간 50건 이상으로 급증했다.

5. 책임의 공백 — 배터리 결함과 차량 결함은 같지 않다

청라 화재에서 경찰은 "원인 불명"으로 수사를 마쳤다. 피해 주민들은 반발했다. "벤츠에 면책권을 준 것과 다름없다"는 말이 나왔다.

이 지점은 법적 공백을 드러낸다. 한국의 제조물 책임법은 제조사가 결함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구조다. 그러나 수사 주체인 경찰·국과수가 원인을 확정하지 못하면, 증명의 부담 자체가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차량 대물보험 한도는 5억원이다. 38억 피해 앞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미국 플로리다의 EQE 화재, 중국 베이징자동차 3만 대 리콜, 청라 화재. 파라시스 배터리에 얽힌 세 사건이 연결되지만, 한국 법정에서 이것이 "결함의 증거"로 받아들여지는지는 별개다.

화재는 차에서 났는데, 책임은 어디에도 붙지 않는다.

6. 정책은 어디에 조준하고 있는가

정부는 2024년 9월 '전기차 화재 안전관리 대책', 2025년 2월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예방 종합대책'을 내놨다. 골자는 세 방향이다.

  •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 + 이력관리제 (2025.2 시행) — 배터리 식별번호로 이력 추적
  • BMS(배터리관리시스템) 장착 시 보조금 추가 — 제조사에 과충전 차단 기능 인센티브
  • 지하주차장 스프링클러 의무 + 방화셔터·소화덮개 설치 — 인프라 강화

방향은 맞다. 그런데 국회예산정책처 2025년 11월 보고서는 한계를 지적했다. "다수 법안이 제조사 자체 부담으로 의무 이행을 규정한다"는 점이다. 제조사 비용 부담이 배터리 가격에 전가될 수 있고, 설치 의무는 신축에만 적용된다. 기존 아파트 수백만 세대의 지하주차장은 사각지대로 남는다.

전기차 화재 건수 추이 (국내, 연간)

2024
73건
2022
45건
2020
12건
2019
7건

출처: 소방청 국가화재통계시스템 (2025). 전기차 등록대수는 같은 기간 약 7배 증가

또 하나 간과된 조항이 있다. 2025년부터 제조물 책임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전기차 제조사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책임 보험이 있으면 피해 보상에서 소비자 부담이 줄어든다. 국산차보다 수입차에 더 큰 압박이 된다.

7. 숫자가 놓치는 것 — 소비자가 구분해야 할 층위

전기차 화재 뉴스를 볼 때 확인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 빈도인가, 심도인가 — "한 대 불탔다"는 빈도다. "140대가 번졌다"는 심도다. 정책·보험·구매 결정에서 요구되는 대응이 다르다
  • 차량 결함인가, 환경 요인인가 — 청라 사건에서 연기가 아파트 전체로 퍼진 건 지하 환경 + 스프링클러 미작동 때문이다. 전기차 탓만은 아니다
  • 어떤 배터리인가 — NCM과 LFP는 화재 특성이 다르다. LFP는 열폭주 온도가 훨씬 높다. 같은 "전기차"라도 리스크가 같지 않다

세 층위를 섞어 보면 "전기차는 위험하다"는 단일 명제만 남는다. 나눠 보면 "어떤 차가,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배터리로" 라는 세 가지 질문이 생긴다. 정책도 보험도 구매 결정도 여기서 달라진다.

다만 숫자 역시 완전하지 않다는 점은 짚어두어야 한다. 한국 소방청 통계는 "차량 화재"의 정의가 폭넓다. 주정차 중, 충전 중, 주행 중이 섞여 있다. 2023년 소방청 발표에 따르면 전기차 화재의 48.2%가 주정차 및 충전 중 발생했다. 내연차는 이 비율이 26.6%였다. 빈도는 비슷해도 "내가 옆에 있을 때" 날 확률은 다르다.

같은 2023년 데이터에서 주차장/공지 화재는 내연차 10만대당 3.9대, 전기차 6.3대였다. 주행 중이 아닌 정지 상태 위험은 전기차가 더 높다. 확률 평균은 전체 주행거리로 희석되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장소(지하주차장)는 희석되지 않는다.

이것이 공포가 완전히 비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다. 내 아파트 지하에서 날 확률, 번져서 내 차로 옮을 확률, 보상이 안 될 확률이 결합되면 개별 확률의 곱보다 체감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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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가 내연차보다 더 위험하다는 단일 문장은 2024년 데이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10만대당 11.89건과 14.95건. 숫자는 분명하다.

그러나 공포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은 빈도를 확률로 읽지 않는다. 한 번 터졌을 때의 심도를 본다. 38억원이라는 피해, 480세대가 집을 비운 밤, 보험으로 메워지지 않는 공백. 이것이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공포의 실체다.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전기차가 위험한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이 전기차 화재를 재앙으로 확장시키는가"다. 지하 환경, 스프링클러 작동 여부, 배터리 제조사 품질, 제조물 책임의 입증 책임. 네 가지가 겹치면 청라가 반복된다.

전기차 보급은 이미 정책 방향이다. 공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공포가 가리키는 구조를 해체하는 것이 남은 일이다.

전기차 화재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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